행복,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우리는 행복을 오해하는 경향이 있다. 행복한 상태라 함은 항상 즐겁고 기쁜 상태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왜곡된 행복관으로 인해, 웃어야 한다는 강박을 지닌 혹은 웃을 일이 없어서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어준다.
어린 라일리의 성격을 형성한 건 미네소타에서의 핵심 기억(Core Memory)들 덕분이었다. 이때, 성격은 가족섬, 우정섬, 엉뚱섬 등으로 표현된다. 그러나 즐거웠던 모든 기억을 뒤로 한 채 낯선 곳에 오게 된 라일리는 갑자기 찾아온 많은 변화에 힘들어한다. 이를 털어놓으려 하지만 밝은 얼굴을 기대하는 부모님을 실망하게 할 수 없어 기회를 놓치고 만다. 제때 표출하지 못한 감정들은 그대로 쌓여 이내 모든 섬을 무너뜨리고 위기를 맞는다.
초반의 슬픔이는 기쁨의 빛을 띠는 기억들을 자꾸 슬픔으로 물들이려고 한다. 기쁨이의 불호령에도 반복하는 모습을 보이고, 이때 슬픔이는 정말로 쓸모없고 방해만 되는 존재로 그려진다. 그런 슬픔이를 저지하는 기쁨이야말로 라일리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영화를 모두 보고 나면 정반대의 감상을 남긴다.
친구들과 선생님 앞에서 처음으로 자기를 소개하는 아주 중요한 순간에, 슬픔이는 라일리의 감정을 건드려 핵심 기억 하나를 만들어낸다. 기쁨이는 이 슬픈 기억이 라일리의 밝은 성격에 영향을 끼치지 않게 억지로 막다가 그만 본인과 슬픔이를 위기로 몰아넣는다. 둘의 위기는 곧 라일리의 위기였다. 라일리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기쁨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슬픔이를 비롯한 모든 등장인물이 라일리의 행복은 곧 기쁨이라고 생각한다). 기쁨이가 사라지자 라일리는 시도 때도 없이 감정 변화를 겪는데, 이런 변화는 부정적으로 작용해 섬이 하나씩 무너지고 만다. 조급해진 기쁨이는 무모한 시도를 반복하다가 점점 더 위기에 처하는데, 빠른 길로 가기 위해 위험을 자초하거나 슬픔이를 버려두고 혼자서 본부로 향하다가 기억 폐기장에 빠지기도 한다. 이는 우리가 알게 모르게 가지고 있던 행복해지기 위한 기쁨에의 강박을 뜻하며, 이러한 강박이 오히려 진정한 행복과 멀어지는 길임을 보여준다.
한편, 슬픔이는 꾸준히 옳은 길을 제시하며 기쁨이의 선택을 우려한다. 지름길 보다는 우회하는 길을 권하고 라일리를 깨우기 위해서는 무서운 꿈을 꾸게 해야 한다는 적절한 조언도 한다. 초반의 역할과 대조되는 모습이다. 결정적으로 슬픔이는 빙봉을 제대로 위로할 줄 알았다. 빙봉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어느덧 잊고 있었던 소중한 무언가를 뜻하는데, 그는 상상 속 친구로서 라일리가 나이가 들면서 더는 필요하지 않아 기억 폐기장으로 갈 운명이었다. 하지만 빙봉은 언젠가 라일리가 자신을 기억해주기를, 라일리와 함께 우주로 떠나기를 고대하면서 계속 도망 다니고 있었다. 따라서 빙봉은 길을 아주 잘 알고 있었고, 슬픔이와 기쁨이에게 본부로 가는 길을 안내해주기로 한다. (빙봉이 길을 잘못 알려주는 바람에 들어가게 된 장소에서 셋은 3단계를 거쳐 추상화 과정이 이뤄지는데, 이는 기억이 어떤 식으로 잊혀 가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던 중 라일리와 우주로 떠날 로켓이 기억 폐기장으로 떨어져 버리자 빙봉은 모든 의욕을 잃고 주저앉는다. 이때, 아주 재밌는 점은 위로를 잘할 것 같았던 기쁨이는 오히려 타인의 감정 내면을 깊이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하면 빙봉이 웃으며 다시 행복해질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슬픔이는 빙봉을 다른 방식으로 위로한다. 빙봉의 슬픔을 공감해준 것이다. 누군가 속상한 마음을 알아주면 더 눈물이 나는 것처럼 빙봉은 눈물을 펑펑 쏟았고, 오히려 마음이 후련해져서 다시 본래의 역할로 돌아가 길을 안내해준다.
그렇다고 기쁨이보다 슬픔이가 더 낫다는 것은 아니다. 주목해야 할 것은 기쁨이와 슬픔이가 함께 문제를 해결한다는 점이다. 슬픔이는 길을 알고 있긴 했지만 내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 잘못된 길을 가는 기쁨이를 적극적으로 말리지도 않았으며, 기쁨이가 기억 폐기장에 떨어졌을 땐 슬픔이는 완전히 포기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기쁨이는 슬픔이가 가지지 못한 '의지'를 가졌다. 기쁨이는 계속해서 위기에 처하면서도 행복해지기 위한 의지를 버리지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계속해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며 결국 본부로 돌아갈 기막힌 아이디어를 낼 수 있었다. 이는 행복에는 의지 또한 아주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행복은 그냥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의지를 지녔을 때 쟁취할 수 있다.
한편, 슬픔이는 '공감'이라는 중요한 키워드를 보여주었다. 눈물이 가져오는 카타르시스의 기저에는 공감이 있다. 우리가 어떠한 작품에 위로를 받고 안정을 느끼는 건 누군가가 나를 이해해주고 공감해주는 것에서 온다. 다시 말해, 작품 속 인물의 상황에 공감하는 난 그 순간 나를 공감해주는 그에게 위로를 받는 것이다. 빙봉은 슬픔이가 자신의 감정에 공감해줌으로써 외면해왔던 상황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행복이란 결코 기쁨만 있어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슬픔이를 보면 그의 답답한 행동이 이해가 간다. 행복한 순간에는 슬픔(을 비롯한 다른 감정들)이 있었고 그것을 공감해주고 위로해주는 이들로 인해 라일리는 행복할 수 있었다. 이를 알고 있던 슬픔이는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라일리의 기억을 물들이려고 했을 것이다. 한편, 자신을 꾸짖는 기쁨이에게 슬픔이가 저 또한 이유를 모르겠다고 하는 점도 특징적이다. 그도 그럴 것이 슬픔이란 감정에는 특별한 이유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슬픔은 어느 순간이나 느닷없이 생길 수 있는 아주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이유 없이 갑자기 즐거운 콧노래가 나오는 것처럼 슬픔도 아주 거창한 이유 없이도 찾아올 수 있다. 그렇기에 무조건 숨길 필요도, 억압할 필요도 없다. 라일리가 섬들을 잃고 가출이라는 길을 택한 것은 기쁨이라는 감정이 사라져서가 아니라 자신의 진짜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고 숨겼기 때문이다. 반대로 마지막에 라일리가 가족들과 행복한 순간을 맞을 수 있었던 것은 기쁨과 슬픔이라는 감정이 돌아와서가 아니라 자신의 감정 그대로를 인정한 덕분이었다. 모든 감정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곧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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