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 속의 낯선, 낯섦 속의 익숙한 이방인
백수린, <여름의 정오> (2015 제 6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삶을 살아가는 데에 고독은 필연적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고독을 견디고 외로움을 극복하는 연습을 해보지만 참으로 쉽지가 않다. 특히, 이방인이 되었을 때는 엄청난 고독을 체감하게 되는데, 이때 느끼는 고독감은 극복하기가 정말 어렵다. '이방인'이라는 단어가 나에게는 별 상관없는 단어처럼 여겨졌던 때도 있다. 나는 어느 때곤 완벽하게 사회에 동화된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규정하는 어떠한 신분에도 속하지 못한 요즘의 나는, 그동안에도 수없이 많은 경우를 이방인으로서 보내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은 나만의 이야기는 아닐 테다.
제목의 ‘정오’는 많은 이들이 자신의 일상을 보내고 있을 시간이다. 직장인은 직장에서 학생은 학교에서 주부는 집에서 그들의 삶을 살아간다. 그렇다면 이 일상이 틀어질 때는 어떨까? 학창시절에 조퇴하고 집에 오는 길은 그렇게 기분이 좋았다. 평소에는 느끼지 못하는 여유로움을 즐기고 있다는 쾌감 때문이었다. 버스 창을 통해 비치는 햇살은 따사로웠고, 바쁜 아침에는 몰랐던 한적함이 있었다. 이렇듯 가끔 찾아오는 일상을 깨트리는 순간은 행복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는 ‘나’의 모습은 지극히 비일상적이다. 잠깐의 일상 탈출은 즐거움을 주지만 일상에서 완전히 벗어난 삶, 게다가 내 의지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외면당하는 삶이 이어진다면 즐거움이 아니라 고통으로 다가올 뿐이다.
스무 살의 '나'는 가족들의 걱정(혹은 힐난)에도 남들처럼 살아가지 못한다. 이에 부모는 바람을 쐬고 오면 좀 나아질까 싶어 오빠가 있는 프랑스 파리로 보낸다. 조퇴를 하고 하루를 쉬다 보면 다음 날 새로운 기분이 되어 일상을 더 잘 보낼 수 있듯, 잠깐의 낯선 세계로의 일탈을 통해 돌아와서 일상에 동화되기를 바라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도착한 여름의 파리는 참으로 기묘하다. 한국보다 해가 길어 밤이었지만 밤이 아닌 것 같고 낯선 언어 속에 둘러 싸여 있는 타지였지만 타지 같지 않은 느낌을 준다. 낯선 곳에 와 있었으나 낯설지 않았던 그 시간 속에서, 처음 보았음에도 왠지 모를 편안함을 주는 '타카히로'를 만난다.
오빠만은 자신의 방황을 이해해주리라 내심 기대했던 ‘나’는 기대가 실망으로 바뀐다. 오빠는 자신의 삶을 살아가느라 바빴을 뿐만 아니라 ‘왜 일상을 살아가지 못하’느냐고 비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빠의 친구 타카히로는 달랐다. 그는 바쁜 오빠와 달리 비일상적인 삶을 살고 있었으며 ‘나’에게 아무런 강요도 하지 않았으므로 그와 함께 하는 시간은 편안했다. 그렇기에 스무 살의 ‘나’는 그 감정을 사랑으로 발전시켰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타카히로에게서 익숙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타카히로와의 만남은 전부 일상과 동떨어져 있는데, 여느 관광객들처럼 관광지를 여행하지 않고 아무도 가지 않을 묘지에서 밥을 먹는다. 모두가 좋아하는 창가 자리를 제쳐 두고 굳이 어두운 안쪽 자리에 앉으며, ‘쓸데없는’ 영화를 보며 하루를 낭비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와의 만남에서 느끼는 안정감은 잠깐, 어느 날 갑자기 타카히로는 자살시도를 한다. 오빠는 그의 자살 시도를 두고 여자 문제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타카히로의 사정은 자세히 알 수 없다. 그가 언급했던 형 때문일 수도 있고 테러 사건과 연관된 어떤 것일 수도 있다. 확실한 건 타인은 누구도 그의 마음을 속단할 수 없다는 점이다.
‘나’는 타카히로의 자살 시도 앞에서 무기력함을 느낀다. ‘J’가 남긴 트라우마를 상기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J는 나가 재학하고 있는 학교를 목표로 공부했던 아이지만, 아마도 ‘나’만큼 성적이 되지 않아 비관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나’는 그런 J를 뒤에서 밀었던 게 자신인 것 같은 죄책감도 느끼고 있다. 그렇게 진학한 대학교 생활은 모두가 말했던 즐거운 시간만은 아니었으며, 그들의 일상에 젖어 들지 못하는 삶을 살다가 ‘나’ 역시도 자살 시도를 하려고 한다.
마지막 순간에 타카히로에게 이런 사정들을 모두 털어놓는 대신 ‘나’는 말한다. “그래도 죽지는 마.” 금방이라도 뛰어내릴 것처럼 지우개를 창밖에 던져보았던 ‘나’는, 그럼에도 죽을 생각이 없었다. 사실은 살고 싶었다. 그렇기에 어둠 속에서 학교 뒷산에 만개했던 조팝꽃을 보았고, 어둠 속에서 그를 빛으로 보았다.
그렇다면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은 어떠한가. ‘나’가 영화관에서 본 여성의 인터뷰에서, 파리는 금방이라도 전쟁이 끝날 것 같았고 독일군이 곧 물러갔다. 사르트르와 여인은 사람들과 기쁨을 나누며 앞으로의 행복을 기대했으나 찾아온 건 또 다른 전쟁이었다.
오빠 역시 마찬가지이다. 유학을 중도에 포기하는 친구들을 보며 불안한 유학 생활을 이어나간다. 그러나 그에겐 희망이 있었다. 열심히 하면 될 거라는 희망 말이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파리에 닥친 알제리 전쟁이 그랬듯 오빠에게도 또 다른 전쟁이 찾아오리란 건 쉬이 예상할 수 있다.
일상을 열심히 살아가던 섬유노동자들은 갑작스러운 재난에 쉽게 목숨을 잃는다. 일상을 열심히 살아갔을 타카히로의 형은 거품 경제 사건 때문에 삶의 흔들림을 겪는다. ‘나’나 J처럼 어린 시절부터 겪어야 하는 경쟁에 지쳐 쓰러질 수도 있다. ‘나’의 남편은 계약직으로 불안한 미래 때문에 아내와의 여행도 즐기지 못한다.
당시 타카히로의 나이를 넘어선 ‘나’는 이제는 남들처럼 일상을 보내는 것처럼 보인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갔을 때부터 남들처럼 학교생활을 하고 연애도 하였으며 계약직 교수이긴 하지만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남편을 두었다. 타카히로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건 또다시 일상에서 벗어난 상황에서였다. 대낮에 경영난으로 문을 닫는 독립영화관에서, 객석이 겨우 3석이 찬 그곳에서 화면 속 여성이 인터뷰하는 장소를 보고 타카히로를 떠올린다. 우연히도 오빠가 그때쯤 타카히로의 안부를 전했고, 남편이 런던으로 출장을 갈 일이 있었다.
그렇게 찾아온 파리에서 나는 타카히로와의 기억이 있는 카페에 앉아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충분히 시간이 있었음에도 타카히로를 직접 만나러 가지는 않는다. 그저 “살아 있으면 된다”고만 생각했다. 나가 어둠속에서 조팝꽃을 보았듯 타카히로도 무언가를 보았을 수도 있다. 그리고 ‘나’는 타카히로로 대변되는 이들에게 살았으니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 여기에는 미래가 있어? 나는 또 묻는다. 그건 모르지. 어디에도 미래가 없다면 차라리 자기 나라에서 사는 게 낫지 않아? 이방인으로 평생 사는 건 외로운 일이야. 내 말에 짧은 침묵을 두고, 그가 말한다. 자기 나라에서 이방인으로 사는 것보다 더 외로운 일은 없어.
스페인에 교환학생으로 있을 때 나는 오히려 이방인이라는 타이틀을 즐겼다. 제삼자의 눈으로서 그들의 삶을 지켜보고 때로는 함께하는 것은 재미있었다. 언젠간 돌아갈 나의 집이 있으며, 한정된 시간이었던 만큼 그들 사회에 완전한 일원이 될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요즘의 내가 한국 사회에서 철저한 이방인이란 생각이 든다.
얼마 전엔 한 아이돌 가수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나이 차이도 얼마 나지 않고 어릴 때부터 TV로 봐왔던, 함께 자라고 있다고 생각했던 이였기에 눈물이 났다. 그렇다고 그의 선택에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 타카히로가 그렇듯, ‘나’가 그렇듯 원치 않는 이방인으로서의 삶은 너무나 고독하다. 더욱 고통스럽게 만드는 건 자신의 고통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이를 털어놓았을 때 상대방에게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게 가장 좋은 경우겠지만, 타카히로도 ‘나’도 서로의 존재가 위안이 되면서도 자살 충동의 결정적인 이유를 말하지 않는다. 말해도 이해해주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서였을 것이다.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누군가 나를 알아줬으면 좋겠지만, 알아주는 게 어려울 거란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 즉 이것을 극복하는 건 철저히 자신의 몫이라는 걸 깨달을 때가 있다. 정말로 고독한 순간이다.
이 소설은 결코 희망을 주지는 않으며, 짧은 글에 너무 많은 장치를 넣어 약간 과하다는 느낌이 없지는 않지만 익숙한 것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낯섦을 느끼고, 낯선 곳에서 오히려 익숙함을 느끼는 인물들을 통해 누구나 때때로 겪는 이방인으로서의 이질적인 감정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살았으니 되었다는 문장이 계속해서 되뇌어지는 글이다.
'BOOK > 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형서, <아르판> (2011 제 11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 (0) | 2018.01.31 |
---|---|
박민규, <로드킬> (2012 제 57회 현대문학상 수상소설집) (0) | 2018.01.31 |
김중혁, <유리의 도시> (1F B1(일층. 지하 일층)) (0) | 2018.01.31 |
김숨, <국수> (2012 제36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0) | 2018.01.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