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게 하는 국수 한 그릇




  김숨, <국수> (2012 제36회 이상 문학상 작품집)

 


 

  지하철을 타고 학교를 오가며 읽은 여러 편의 작품 중 어떤 작품을 내 첫 서평으로 쓸 것인지 고민을 하였다. 두어 편의 작품 사이에서 내내 고민하다가, 서평을 쓰려고 마음을 먹으니 바로 한 작품이 떠올랐다. 마음을 가장 오래도록 먹먹하게 만들었던 김숨의 <국수>가 바로 그것이다. 생각해둔 작품이 아니었는데도 갑자기 불쑥 떠올랐다. 소설을 읽고 느꼈던 감정도 함께였다. 왜 이렇게 와 닿은 것일까. 인물 간의 첨예한 갈등이 있는 것도 아니며, 더군다나 흥미로운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분명 평소에 즐겨 읽는 스타일의 소설은 아니다.

 

  이 작품은 전체적으로 새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처럼 쓰였다. 이미 한차례 힘겹게 얻은 아기를 유산하고 다시 한 번 인공수정을 시도하러 가는 길. 즉흥적으로 찾아간 새어머니 집에서 국수를 만드는 과정에 두 사람의 삶과 감정이 묻어나온다. 이 작품 속엔 줄임표(‘……’)가 자주 사용되는데, 이는 읽는 이로 하여금 무언가 억누르는 듯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가끔 비치는 ‘죄’라는 단어 역시 그러한 감정에 한몫을 한다. 때문에 별다른 변화 없이 덤덤하게 흘러가는 어조인데도 자신의 죄를 용서해주기를 바라는 한 편의 간절한 반성문처럼 느껴진다. 

 

  한을 눌러 담는,

     사랑을 전하는,

         죄를 고하는 반죽의 시간

 

  새어머니는 아이를 낳지 못하여 이혼을 당하였다. 그로 인해 ‘석녀(石女)’라고 불리며 ‘나’의 집의 재취자리로 들어왔다. 그러나 이미 3남 1녀를 둔 아버지는 새어머니에게서 바라는 것이 없었고, 금방 돌아온다던 친어머니를 기다리던 ‘나’는 새어머니를 어머니로 인정하지 않았다. 여자로 태어나 자식을 낳는 의무이자 축복을 누리지 못한 새어머니는 어렵게 얻게 된 자식들과 ‘국수’라는 ‘끈’으로 연결되고자 하였다. 하지만 이마저도 ‘나’로 인해 끊어지고 만다. 이러한 새어머니의 한은 반죽 속에 눌러 담겼다. 꾹꾹……. 그리고 그렇게 응어리진 한은 숙성이라는 오랜 인고의 시간을 거친다. 아무리 바빠도 반드시 거쳐야 하는 그 숙성의 시간 동안에 반죽은 철저히 외면당한다. 한을 반죽 속 깊은 곳에 가둬버리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완성된 반죽은 기계도 ‘나’도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차진 국수 가락이 되어 담긴다. 

  새어머니의 존재를 부정하듯 내내 국수를 밀어내던 ‘나’는 딱 두 번 그 국수를 그리워한다. 첫 번째는 다닌 지 고작 오 개월밖에 되지 않는 첫 직장에서 해고당했을 때였다. 새어머니의 국수가 그리워 열심히 반죽을 하였지만 그 반죽은 냉장고에 한구석에 처박혀 썩고 만다. 그리고 두 번째, 인공수정으로 어렵게 얻은 아기를 잃었을 때였다. 새어머니는 연락을 받고 바로 먼 길을 달려와 ‘나’를 위해 국수를 끓여주었다. 그러나 ‘나’는 새어머니의 국수를 그리워했음에도 아기가 쉽게 들어서지 않는 자신의 인생이 그의 탓인 것만 같아 국수를 변기통에 부어 버린다. 이렇게 ‘나’는 새어머니를 사랑하고 그리워하면서도 모순적으로 그의 인생과 제 인생이 맞닿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이러한 부정이 무색하게도 영영 오지 않을 것 같던 ‘반죽의 시간’은 ‘나’에게도 찾아온다. 새어머니는 일평생 자신의 한을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하여 혀에 크나큰 고통이 스미게 된다. ‘나’는 새어머니가 그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기를 바라며 국수를 만든다. 새어머니가 국수를 만들던 그 자세 그대로, 사용하던 밀대로, 서 있던 부엌 그 자리 그대로, 그렇게, 그렇게……. 맞닿지 않기를 바랐던 새어머니의 인생은, 국수 속에 담긴 어머니의 사랑에 죄를 고하며 결국 ‘나’의 인생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너무나도 늦게 깨달아버린 그 사랑, 아니 알면서도 모른 척 해왔던 그 사랑을 국수를 만드는 원죄의 행위를 통해 어머니에게 되갚는 것이다.

 

  처음 새어머니가 내밀었던 소박하기 그지없던 국수는 친어머니를 기다리던 ‘나’에게 “정말로 어머니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원치 않는 확신을 심어주었다. 이와 동시에 친척들에게 욕을 먹으며 식모처럼 일만 하는 새어머니라는 낯선 존재는 어린 ‘나’에게 달갑지 않은 것이었다. 이후 어른이 된 ‘나’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음에도 새어머니의 인생을 그대로 따라간다. 그리고 이를 부정하며 살아온 세월 속에서 새어머니가 병에 걸리고 나서야 그 사랑의 깊이를 인정한다. 이 같은 어머니의 사랑은 텅 비어버린 나무 밑동으로 비유된다. 가지를 뻗을 수 없는 나무가 그 속이 비어있기 때문에 나비를 품을 수 있었듯이, 자식을 낳을 수 없었던 새어머니는 그렇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고 4남매를 사랑으로 품을 수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라는 존재는 누구나 눈물짓게 하는 힘이 있다. 이 소설은 이렇게 모두가 가지고 있는 감정을 ‘국수’를 이용해서 풀어내었다. 나는 어머니의 사랑에 제대로 보답하고 있을까? 소설을 읽고 난 후 이 질문이 계속 내 머릿 속에 맴돈다. 상황은 달라도 어쩌면 소설 속 ‘나’와 내 모습은 서로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 새어머니의 첫 국수를 먹던 어린 ‘나’와 어른이 되어 자신이 만든 국수발을 끊던 ‘나’의 심경의 변화는 가슴 한 켠을 건드리며 ‘나’가 말한다. 너도 나중에 이 반성문을 쓸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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