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의 도시는 언제나 불안하다




  김중혁, <유리의 도시> (1F B1(일층. 지하 일층))

 


 

  <유리의 도시>를 읽기 전 어느 날, 버스 맨 뒷자리에 앉아서 집 앞 정류장에 도착할 때까지 내내 창밖을 본 적이 있다. 그때 창밖엔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버스를 타기 직전에 갑자기 먹구름이 끼고 비가 내린 것이었다. 나는 아침까지 번거롭기만 했던 우산의 존재가 반가워짐을 느끼면서 빗물이 바닥을 치며 튀어 오르는 모습을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은 마치 새끼 새가 아직 둥지에 있을 때 어미 새에게 먹이를 달라고 아우성치는 모습 같았다. 어디선가 짹짹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트럭이 지나간 자리에도, 승용차 위에도 모두 새들이 있었다. 그러나 버스에서 내리고 나니 쏟아지는 비는 더는 낭만이 아니었다. 그저 바짓단을 젖게 하는 불쾌한 대상으로 바뀌어있었다. 그때 난 “비가 와서 그런 건가, 감상적인 척 돋았네. 웃겨.” 하며 금세 비에 대해 툴툴거렸다. 그리고 며칠 후 <유리의 도시>를 읽고 나서 마치 유리가 하나의 생명체처럼 느껴졌다. 그날의 기억처럼 말이다.


  이 소설을 읽고 나서 바로 떠오른 것은 ‘위기 탈출 넘버○’이라는 TV 프로그램이었다. 이는 평소에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던 행동들이 위험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를 담은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요즘 유머 사이트에서는 너무 지나치게 모든 행동을 걱정해서 아무 것도 못하겠다며 우스갯소리로 이용되기도 한다. 그런데 만약 이 프로그램의 소재처럼 ‘너무도 당연해서 그 존재를 느끼지 못할 만큼의 어떠한 것’ 때문에 위험해 처한다면 그로부터 오는 충격은 어느 정도일까? 이 소설에서 말하는 ‘그것’은 ‘유리’이다. 우리의 삶에서 빠질 수 없는 필수품인 유리 말이다. 조금만 신경 써서 둘러보면 모든 곳에 유리가 있다. 아주 작은 것부터 엄청나게 큰 대형 유리까지 그 종류는 매우 다양하다. 그런데 그 유리가 불특정 다수의 사람을 죽인다면 어떻게 될까? 그것도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모르는 상태로 말이다.


 

  <유리의 도시>는 추리 소설 같다. 이 소설의 글쓴이인 김중혁 작가의 인터뷰를 보면 더욱 섬뜩한 분위기를 풍기기 위해 추리 형식으로 글을 전개했다고 하였다. 다 읽고 나서 “정말로 이럴 수 있겠구나.” 하는 불안감이 들게 한 것으로 보아 (‘알루미노코바륨’의 존재가 사실이 아니라고 해도) 작가의 이러한 의도는 어느 정도 성공한 것 같다.

 


  이 사건은 테러일까, 재해일까.

 


  소설이 추리 형식을 띠고 있으므로 그에 맞게 글을 파악하려고 노력해 보았다. 엄청난 크기의 대형 유리가 고층에서 떨어지면서 많은 사상자를 만들어냈고 이러한 일은 반복적으로 발생했다. 이 때문에 재해방지대책본부 이윤찬과 도심테러격파본부 정남중이 수사에 참여하였고, 이들에게 이 사건이 재해인지, 테러인지 구분 짓는 것은 중요했다. 전문가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수사를 하면서 처음 내린 결론은 테러였다. 용의자 고은진이 친구의 죽음을 계기로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테러한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고은진은 첫 번째 사건 때 알리바이가 있던 데다가, 그를 잡고, 다른 용의자가 없는 상황에서 사건은 또다시 발생했다. 다른 공범이 있을 가능성을 추측하지만 결국 소설은 범인을 잡지 못한 채 끝이 난다. 무언가 불안한 결말이다.


  어쩌면 첫 번째 사건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건이 고은진의 짓이 아닐 수도 있다. 물론 유리를 제작할 때 ‘알루미노코바륨’을 섞은 범인은 고은진이다. 소형 유리와 다르게 누가 제작한 것인지 알 수 없는 대형 유리를 택한 것도 그렇고, 다른 증거 역시 그렇게 말하고 있다. 하지만 유리가 떨어지게 한 범인은 고은진이 아닐 수 있다. 침묵을 고수하는 고은진이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죽길 바라는 겁니까.”라는 물음에 부정하듯 몸을 움직이고, “유리 깨기 참 좋은 날씨죠?”라는 비아냥에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이윤찬을 비웃는 모습을 보였다. 자신이 범인이라고 확신하는 이윤찬을 비웃는 것이다. 게다가 고은진이 테러하는 이유가 사람들에 대한 분노 때문에, 아니면 자신이 아는 것을 과시하고 싶어서라면, 충분히 사람이 많은 요일과 시간대, 장소를 택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고은진이 (결국 미수에 그쳤지만) 범행을 시도하는 곳은 사람이 거의 없는 평일 낮 시간대의 생태공원이다. 소설의 결말 부분에서 이윤찬이 말하듯이 ‘알루미노코바륨’이 섞인 유리가 사고로 이어지는 것은 비가 오기 전이라는 습도 높은 환경에서,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는 자연의 어떠한 소리 때문일 수도 있다. 즉, 테러가 아닌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재해라는 것이다. 불순물이 들어가 잘못 만들어진 유리가 폭발하는 것은 1년 후일지, 10년 후일지, 아니면 바로 내일일지 아무도 모른다.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모른다.

 


  유리의 도시, 광찬구 미온동

 


  처음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지명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다. 그저 나머지 장소처럼 ‘첫 번째 사고 발생 지점’ 정도로 처리할 수도 있었는데 왜 굳이 없는 지명을 만들어 냈을까. (너무 과장되게 파고든 것일 수도 있지만, 그 의미를 파헤쳐 보니 이 소설의 제목과 함께 나름의 전체적인 결론을 내리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먼저 미온동의 ‘미온’을 국어사전으로 찾아보면,

        미온1(未穩) (‘미온하다’의 어근) 아직 평온하지 않음.

        미온2(微溫) 〔명사〕 온도나 태도가 미지근함. 또는 그런 온도나 태도.

이라는 뜻이 나온다. 더 널리 쓰이는 것은 후자이지만 소설의 내용으로 비추어 보아 전자가 더 알맞는 듯하다. 하지만 광찬구의 ‘광찬’은 특정 한자어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광’이 찬” 쪽으로 생각해 보았더니, ‘미치다’의 의미보다는 ‘빛(光)’의 의미가 알맞아 보였다.


   텔레비전에서도 비슷한 실험을 한 적이 있다. 지상에다 카메라를 설치해두고 5층 높이에서 유리를 떨어뜨리는 실험이었다. 유리가 떨어지는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하늘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는다면 빛이 반사되는 순간 유리를 확인할 수 있지만 반짝이는 순간은 아주 짧았다.

   유리거리에는 서른 개 정도의 공장이 한 줄로 늘어서 있었고, 가게 앞에는 유리를 실어나르기 위한 트럭이 한 대씩 서 있었다. 가게 안에 있는 것도 유리였고, 트럭에 실린 것도 유리였고, 모든 게 유리였으므로 거리는 투명해 보였다. 햇빛이 모든 공간을 꿰뚫고 지나가고 있는 듯했다.

 

<유리의 도시> 중


 

  소설 속 내용처럼 평소에는 그 존재를 모르다가 햇빛이 비추고, 그 빛을 반사할 때는 유리의 존재를 느낄 수 있다. 이 때문에 ‘빛=유리’라는 결론을 내렸다. 즉 광찬구 미온동은 ‘유리가 가득 찬 평온하지 않은’ 도시인 것이다. 이는 현대의 모든 도시와 다를 것이 없다.


  한편 환각에 휩싸인 고은진은 떨어지는 정지현을 산산조각이 나는 유리의 모습과 동일시했다. 고은진이 대형 유리에 ‘알루미노코바륨’을 섞은 것은 정지현을 떠올리기 위함인가 싶을 정도로, 유리가 수축하여 떨어지는 모습은 마치 정지현이 두려워하며 자살하는 모습 같다. 이 때문에 정남중이 유리가 떨어지는 것을 ‘자살’이라고 표현한 것은 고은진의 환각과 맞물리면서 매우 적절한 비유처럼 보인다.


  ‘알루미노코바륨’이 섞인 ‘잘못’ 만들어진 유리는 완전하지 못해 항상 불안에 떠는 사람과 같다. 스스로 완전하지 못함을 알고 있는 유리는 불안한 환경에서, 어떠한 자극을 받으면 불쑥 자살해 버린다. 이러한 유리가 가득 찬 도시는 결코 평온할 수 없다. 사람들은 유리가 혹여나 내 위로 떨어질까 불안하다. 떨어지는 유리도 불안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도시를 떠날 수 없고, 도시엔 유리가 가득하다. 그 때문에 또다시 불안하다. 우리가 사는 모든 광찬구 미온동, ‘유리의 도시’는…… 언제나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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