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진학하고 나서 세계사 공부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다. '대학생(大學生)'으로서 당연히 알아야 할 것도 모른다는 게 매우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졸업을 앞두고 휴학을 한 지금에서야 직접 책을 찾아서 읽게 되었다.

  도서관에는 세계사와 관련된 많은 책이 있었다. 어떤 특정 시험을 목표로 한 것이 아니었기에 '재밌게 읽을 수 있어야 한다'를 최우선 기준으로 삼았다. 그렇게 눈에 띈 책이 『살아있는 세계사 교과서 2』였다. 원래『스무 살을 위한 교양 세계사 강의』(2010)로 고대부터 현대까지 훑고 근대부터만 좀 더 자세히 보려고 곁다리로 빌려온 책이었으나, 2편만 빌려온 것이 아쉬울 정도로 알찼다. '교과서'라는 제목에 걸맞게 풍부한 자료와 어렵지 않은 구성으로 막힘 없이 술술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선생님들이 어떻게 하면 학생으로 하여금 흥미를 느끼게 할 수 있을지를 많이 연구한 흔적이 보인다. 

(『스무 살을 위한 교양 세계사 강의』도 좋았다. 두 책은 제목에서도 보여주듯이 각각 청소년과 성인을 위한 책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영화 <고령화 가족>에서 인모(박해일)가 자신을 무자비하게 때리는 조직폭력배에게 인간의 존엄성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다. 인모는 자신을 이렇게 때리는 행위는 최소한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도록 제도를 발전시켜 온 인간이란 존재의 존엄성을 짓밟는 것이라고 말한다. 영화에서는 다소 뜬금없는 대사로 느껴졌지만, 책을 읽는 내내 이 장면이 떠올랐다.

  인류의 역사는 그야말로 아이히만의 역사였다. 흑인 노예를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은 이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전쟁을 일으킨 이들, 그뿐만 아니라 전쟁 중 민간인을 학살하고 여성을 성적으로 유린한 이들 모두 아이히만이었다. 이들은 잘못을 '몰랐'으며, 이들의 행동은 '당연'했다. 이들은, 이들의 세상에 아무런 문제의식을 가지지 않은 매우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한편, 인류의 역사는 아이히만의 역사임과 동시에 혁명의 역사였다. 영화에서 인모가 말했듯이 인류의 역사는 존엄성을 지키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아니, 사실 발전해 온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인모의 말처럼 제도는 발전했더라도 실상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일지도……. 어쨌든, 비록 소수의 이익을 위해 다수의 존엄성이 무참히 밟히고 뭉개져 왔으며, 또한 여전히 그러하더라도, 이러한 사실에 문제를 제기하고 맞서 싸우는 사람들은 항상 존재해 왔다. 이 영웅들 역시 평범한 사람들이다.

  이에 관하여 책에서 베트남 전쟁을 설명하면서 여성 전사 우옌티쑤언을 소개한 부분이 참 인상적이다. 베트남을 해방시킨 사람들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다. 어린 나이에 무자비한 폭력에 맞서 싸운 우옌티쑤언과 같이 평범한 민중들이었다. 이런 점으로 보아 한나 아렌트가 '악의 평범성'을 주장한 것처럼 '영웅의 평범성' 또한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결국, 평범한 사람이 악인이 되고 영웅이 된다.

우리는 이러한 역사를 지침서로 삼아 악인과 영웅의 갈림길에서 너무도 쉽게 악인의 길을 택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경계해야 할 것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