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끌리는 대로 집어온 책 중에 한 권이다. 가지고 와서 보니 책의 표지에 나온 설명도 그렇고, 꽤 유명한 분의 저서였나 보다. 부제에도 나와 있듯이 저자는 영상 매체가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끼치는 오늘날, 영화를 문학텍스트의 일종으로 바라봄으로써 그 속에 담긴 메시지를 찾아내고자 한다. 개중에 단순히 상업영화 혹은 오락영화라고 치부하고 넘겼던 대표적인 작품들을 하나하나 파헤치면서 그것이 얼마나 많은 시사점을 지니고 있었는지를 설명한다.



  신간 코너에서 가져왔는데, 알고 보니 이 책은 1994년에 쓰인 『김성곤 교수의 영화 에세이』라는 책의 개정증보판이었다. 서두에 실린 저자의 말이나 설명에 따르면 위와 같은 시도가 저자에 의해 국내 최초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 정보를 알고 나서 책을 접하면 읽는 내내 느껴지는 약간의 위화감의 원인을 파악할 수 있다.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시대에 따른 영웅상의 변화였다. 영웅을 나누는 기준은 이러하다. 자신이 믿고 따르는 정의에 '왜?'라는 의문을 품는 자인지 아닌지. 사람들이 환호하는 우상의 변화는 비단 영웅들만의 이야기에 그치지 않는다. 신념의 흔들림을 겪었는지에 따라 얼마나 많은 선택이 나뉘는지, 그것이 한 시대를 호령하는 자의 선택이라면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되는지, 우리는 반복되는 역사를 통해 알고 다. 이는 이른바  '불신시대'로 불리는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묻기도 한다.



  사실 비슷한 책은 많다. 영화는 관객들에게 이미 하나의 텍스트로서 인식되고 분석되어 온 지 오래다. 영화의 대중화가 시작된 이래로 관객들 수준 역시 높아졌으며, 반드시 책이라는 매체가 아니더라도 인터넷의 블로그나 커뮤니티 등에서 쉽게 이를 향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화를 단순히 오락거리로만 치부하는 관객들을 계몽하려는 듯한 어조는 지금 읽는 독자들에겐 조금 당황스럽게 느껴질 수 있겠다.



  책이 오래된 만큼 분석되는 영화들도 모두 예전 영화들이다. 이 책에 실린 영화 제목들을 죽 훑어보니 내가 본 영화는 3편 내외였고, 이름만 들어 알고 있던 영화가 2편 정도 되었다. 작품을 보고 분석하는 식의 책은 그 특성상 가장 최근의 것을 보는 게 좋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는, 심지어 우리의 생각을 장악하는 이념도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이므로 최근의 것을 읽어야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지기 때문이다. 내가 썼던 글도 3, 4년 전에 쓴 글은 그 당시의 편협했던 가치관이 담겨 있어 블로그를 옮기면서 가져오지 못한 것(가져온 글 중에 지우고 싶은 것도 있다)도 많다. 이렇듯 책이 쓰인 지 오래되었기도 하고 (재편집하여 출간하면서 최근 영화에 관한 부분도 추가되긴 했지만 만족할 만큼의 양은 아니다) 어쩌면 같은 영화를 보고 남긴 여러 사람의 생각을 보기에는 블로그와 같은 매체에 비해 조금 아쉬울 수도 있는 책이지만, 그럼에도 한 번쯤은 읽어보라고 추천해주고 싶다.



  저자의 전문분야이면서 말하고자 하는 바에 부합한 영화들을 선정하다 보니 책에 실린 영화들 전부 할리우드의 상업영화이다. 할리우드 영화가 지금까지도 우리 영화 산업에 미치는 영향력이 어마어마하다는 점에서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할리우드 영화의 '전형'을 파악하기에 아주 좋다. 물론 우리나라 영화에 대한 설명이었다면 그 역사적 배경이나 이념의 흐름 등의 설명으로 독자들이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었을 거란 아쉬움은 남는다. 그러나 이 책의 모든 시사점은 외따로 떨어진 어느 특수한 곳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류 보편적인 특성들이다. 집단과 개인, 인간이 지배 권력에 소비되는 형태, 자연 파괴와 그것으로 인한 재앙, 가정불화, 인종차별, 소수자, 페미니즘, 사랑 등 결국 모든 인간에 관한 이야기라는 말이다



  이런 점에서 영화를 이해하고 접근하는 데에 시각을 넓히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다. 다만 줄거리와 영화 전반이 잘 설명되어 있음에도, 모르는 영화나 배우들에 대한 설명은 재미를 반감시키므로 반드시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고 싶다. 흥미가 가는 부분만 골라서 읽어도 충분히 도움이 될 것이다.




  조금 뜬금없을 수 있지만 이 책을 읽고 내가 내린 결론은 이러하다. 


  뚜렷한 가치관 없이 제작된 오락영화는, 오락영화라 해도 절대 성공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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