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에 다닐 때, 내 또래 수험생에게 선풍적 인기를 끌던 책이 있다. 『언어의 기술』이다. 요즘에도 이 수험서가 나오는지 모르겠다. 당시 선생님들은 학생들의 자의적 해석을 막고 독해 능력을 저하한다며 좋아하지 않으셨지만, 기존 수험서들과는 다른 파격적인 모델이어서 인기를 끌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의 난 선생님의 생각에 동의하면서도 새로운 수험서가 매력적으로 다가왔었다. 언어를 기술로 접근하다니!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책을 읽었어야 잘할 수 있다는 언어를, 기술을 익히면 단기간에 점수를 높일 수 있다는 설명에 어느 수험생이 외면할까.


  평소에 책을 많이 읽고, 글을 많이 써봐야 글쓰기 실력이 는다. 누구나 알지만, 누구나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 중 한 명인 나에게, "글을 잘 쓰는 법"과 같은 글은 참 매력적이다. 마치 약 10년 전에 매력 있게 느꼈던 수험서처럼.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창작'을 기술로 접근하다니! 이 책도 그렇게 느껴졌다. 게다가 무려 작가의 '창작의 비밀'이란 부제를 달고 있다.


  그러나 창작의 기술을 논하는 여느 책들처럼 글쓰기 습관을 바꾸는 법이 나열되어 있으리라 상상하던 난 페이지를 넘기면서 약간 당황했다. 책의 구성 자체도 종잡을 수가 없었다. 갑자기 막 물건들이 나왔다가, 일과가 나왔다가, 그림이 나왔다가, 또 마지막엔 진짜 시험을 보듯 답을 맞혀가며 읽어야 한다. 


  나중에 김중혁 작가 북토크( 북토크 참석 후기 >> 2018/01/31 - [DAILY] - 『무엇이든 쓰게 된다』 출간 기념 김중혁 작가 북토크에 가다 ) 에 참석하면서 다시 한번 느꼈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저자의 의도를 잘 느낄 수 있었다. 사실 누구나 알고 있듯, '창작'에는 드라마틱한 '기술'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글의 목적에 맞는 문단의 순서를 익히고, 알맞은 단어를 쓰기 위해 사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메모는 평소에 자주 하라는 등의 조언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또한, 이런 조언을 듣고 실천을 하는 건 본인의 몫이란 것도, 그게 자연스럽게 내 글로 이어지기까지가 쉽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이러이러하게 해라"가 아니라 그저 저자는 "이렇게 하고 있다."를 보여 준다. 작가의 생활 패턴이나 작가가 주로 쓰는 물건들을 통해 작가의 삶을 잠깐이나마 대리 체험해볼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또 한 번 '창의성'이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과정이 아니란 걸 깨닫게 된다.


  우리의 삶 곳곳에 널려 있는 많은 것들을 '낯설게 바라보'고, 글감을 모으고, 이를 약간의 기술과 함께 글로 옮기기까지 혹은 그림으로 그려내기까지의 과정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을 꼽자면 바로 첫 단계이겠다. '낯설게 바라보기.'


  인간과 창의성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부분이다. 우리는 무언가 창작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고, 창의성은 특정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신적인 능력이 아니다. 물론 유독 '낯설게 바라보'는 눈이 더 발달하거나 손재주가 좋을 수는 있지만, 사실 누구나 창작을 할 수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를 인지하고 자신이 재미있어 하는 분야로 그것을 펼쳐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의 부제가 '글쓰기의 비밀'이 아니라 '창작의 비밀'일 것이고, 또 '글을 잘 쓰게 된다'가 아니라 '무엇이든 쓰게 된다'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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