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들은 히든 피겨스일 수밖에 없었나




  외국 작품을 번역 없이 원래의 제목 그대로 표기하는 추세가 된 건 꽤 오래전부터다. 원제와 번역된 제목을 비교하면서, 잘 되었으면 잘 된 대로, 아쉽게 되었다면 아쉬운 대로 그 번역을 평가할 때 느끼는 재미 역시 개인적으로는 매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원제 그대로 개봉될 때면 이 점이 참 아쉽다. 

  반면 원제 그대로 쓰일 때의 재미 또한 없지 않다. 난 영화의 장르나 주요 제재를 제외하고는 영화에 대한 어떠한 사전지식도 얻지 않기를 바라는 편이다. 최대한 편견 없이 영화를 대하고 싶은 이유에서다. 따라서 예고편을 보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 나에겐, 번역되지 않은 제목은 무슨 영화인지 단번에 알아채기 어렵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영화의 감상을 모두 마치고 난 후 제목이 의미하는 바를 아예 처음 깨달았다거나 어설프게 혼자서 추측했던 의미를 다시금 새롭게 정의하는 과정이 굉장히 흥미롭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경우, 세 여성이 나사(NASA, 미국 항공 우주국)에서 겪었던 실화로서 페미니즘 영화라는 이야기만 듣고 예매를 했기 때문에 영어로 된 제목의 의미를 파악해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화장실에서 손을 씻으며 아, 그래서 히든 피겨스였구나.라고 떠올렸을 뿐이다. 역사로는 배우지 않았던 인물들, 그렇기에 숨겨진 영웅이었던 이들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곱씹을수록 히든 피겨스가 히든 피겨스였어야 하는 이유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 영화는 수학 천재라는 수식어가 전혀 아깝지 않은 캐서린 존슨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그는 하루에도 몇 번씩 새로운 정보가 필요한 곳에서 매우 빠른 속도로, 그것도 손으로 일일이 계산을 해낼 수 있다. 이렇게 엄청난 재능을 가진 그이지만 흑인이라는 이유로,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다. 직장 상사인 알 해리슨이 캐서린을 사사건건 무시하며 얄미운 행동을 일삼는 폴 스태포드에게 대신 쓴소리를 해준다거나, 화장실에 달린 '유색 인종 전용(colored)' 팻말을 부숴 버리는 등의 모습은 아주 속이 후련하면서 감동과 함께 소소한 재미도 안겨준다. 그러나 아무리 그가 캐서린을 돕는다 한들, 본질적으로 캐서린은 알 해리슨도 폴 스태포드도 될 수 없다.

   유리천장이 너무나 두껍기 때문이다.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그 어떤 이들보다도 대단한 업적을 남긴 캐서린이다. 하지만 오늘날 계약직과 다름없는 전산원의 위치에서 벗어날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그가 해내던 계산을 대신해줄 기계가 들어오자, 곧바로 캐서린은 쫓겨날 수밖에 없다. 영화의 후반부에서는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아주 인상적인 장면이 나온다. 그가 기계도 하지 못한 계산을 해낸 덕분에 머큐리7은 기적적으로 성공했다. 장차 미국 우주 비행 역사에 길이 남을 순간, 모두가 기쁨을 나누는 중에 캐서린도 좋아하다가 이내 병풍처럼 서 있을 뿐이다. 서로를 얼싸안으며 좋아하는 사람들과 마치 다른 세상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기에 쓸쓸히 돌아서는 그를 붙잡고 격려하는 해리슨의 모습은 오히려 판타지 같다. 

   이 장면은 정말 뇌리에 아주 강하게 박혔다. 캐서린은 말 그대로 이방인이었다. 엄청난 능력으로, 프로젝트의 첫 시작부터 계속 큰 공을 세웠던 이였지만 다시 지하의 유색 인종 컴퓨터실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계산을 멋있게 해냈으나 또다시 주인공이 아니라 배경이 된다. 아니, 배경조차 아니었다.

  최초 흑인 여성 엔지니어를 꿈꾸던 메리 잭슨은 위와 같은 상황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도전조차 하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를 눈여겨보던 유대인인 폴란드 출신의 엔지니어는 이렇게 묻는다. "네가 백인 남성이었다면, 이런 고민을 했을까?" 그 역시도 유대인으로서 받았던 차별과 사회가 정한 한계를 겪었기 때문이다. 이에 메리는 이렇게 답한다. "제가 백인 남성이었다면, 이미 엔지니어가 되어 있었겠죠." 이 장면에서 나는 전율이 일었다.



  한편, 영화가 끝난 후 나 자신을 돌아보게 했던 인물은 도로시 본이다. 매우 뛰어난 두뇌의 소유자인 캐서린과 '최초'라는 타이틀로 판사를 설득해낼 줄 알았던 영리하면서 당찬 메리와 달리 도로시는 다소 평범해 보인다. 차 안에서 그 둘과 대화를 하면서 도로시는, "너희들은 앞서 나가지만 나만 제자리인 것 같다."라며 스스로를 평가했다. 그는 주임의 역할을 대신 해내고 있으면서도 봉급은 그것에 맞게 대우해주지 않는 부당함에 지속해서 항의하지만 백인 여성인 비비안 미첼은 이를 가볍게 무시한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기계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었던 도로시는 나사에 새롭게 들어온 기계(오늘날 슈퍼컴퓨터)를 우연히 보게 된다. 캐서린을 밀려나게 한 그 기계였다. 이에 도로시는 결국 이 기계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할 것이라는 판단을 하고, 백인 전용 도서관에 가서 책을 훔치는 등 열심히 공부한 끝에 자신이 관리하던 흑인 전산원들을 공부시키며 함께 능력을 키운다. 그리고 마침내, 주임의 자리에 앉게 된다.

  도로시는 빠르게 변화하는 나사의 흐름을 파악할 줄 알았고, 그것에 맞게 자기계발을 했다. 그러므로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인문대 졸업생으로서 여태까지 나는 힘든 상황을 원망만 했지 어쩌면 그를 타개할 어떠한 노력도 하고 있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다. 만약 기회가 왔을 때의 난, 충분히 자격을 갖춘 이가 되어 있을 것인가…. 반성을 하게 된다.



  여기서 또 비비안 미첼이란 인물은 흥미롭다. 물론 영화 속에서 미첼은 흑인을 차별하는, 선과 악 중에서는 악에 가까운 인물이다. 하지만 도로시가 변화의 흐름을 제대로 읽고, 리더로서 사람들을 현명히 이끄는 모습을 보였을 때 미첼은 이를 인정하고 자신을 숙일 줄 알았다. 같은 화장실 거울을 보며 도로시를 인정하고 유대감을 나누는 장면 역시 이 영화 속에서 손꼽을 만한 좋은 장면이었다. 하필 왜 화장실이었을까를 생각해보면 왜 좋은 장면이었는지 더 이해가 된다. 그들은 여태 같은 화장실을 쓴 적이 없었으므로.



  반면 도대체 남편 캐릭터의 역할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그나마 메리의 남편은 처음엔 메리의 한계를 지적해주다가 나중에는 응원해주는 역할로서 메리를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을 말해주는 역할을 한다면, 캐서린의 남편이 극의 서사에서 필요한 이유는 도저히 모르겠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라서 그 인물의 가정사를 다룬 것이었다고 하기엔, 굳이 제한된 시간에 그들의 사랑 이야기까지 넣었어야 할 만큼 중요한 부분이었는지가 의문이다.

  캐서린의 남편이 된 콜로넬 짐 존슨은 처음엔 캐서린에게 무례했지만 결국 이를 사과하고 멋진 남편이 된다. 이게 끝이다. 굳이 이 캐릭터가 필요한 이유를 찾자면 처음에 캐서린의 능력을 무시했다가 사과하는 것, 그 정도면 됐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굳이 그가 멋들어지게 프러포즈를 하고 아이들과 어머니가 함께 그들의 결혼을 축하해주는 것도 보여준다. 아마도 캐서린이 결혼을 하면서 축하 선물로 진주 목걸이를 받는 것을 넣고 싶어서였던 것 같다. 이를 통해 캐서린의 능력을 인정해주는 해리슨을 표현하려고 했던 것 같긴 한데, 그렇다면 이왕 쓰는 거 남편의 캐릭터를 잘 살렸어야 한다. 가뜩이나 세 명의 이야기를 담느라 다소 정신없는 구성의 영화에서 남편과의 러브 스토리까지 넣으니 더 아쉬움이 남는다. 캐서린의 에피소드 위주로 가는 거야 이해한다 치더라도, 차라리 이 내용보다 메리의 학교생활이나 도로시가 주임으로서 해내는 모습을 더 담았다면 좋았을 것 같다.



  그래도 페미니즘 영화로 평가받을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엄마로서의 여성을 그리 깊게 다루지 않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위와 같은 이유로 결혼 이야기를 넣고 싶었던 건지 캐서린의 아이 셋을 보여준다. 엄마가 보고 싶어서 엄마가 올 때까지 자지 않는 아이들, 그를 보며 미안해하는 엄마. 워킹맘의 전형적인 이야기다. 그러나 도로시의 아이들은 버스에서 잠깐 비추는 게 전부였고, 메리의 아이들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남성들의 성공 스토리를 담으면서 집에 아이를 두고 일을 해야 하는 워킹파파(이런 용어는 있지도 않다. 그나마 드라마 등을 통해서 육아대디란 말이 쓰이나 본데, 엄마에게 워킹이 얼마나 낯설고 아빠에게 육아가 얼마나 낯설면 이런 용어가 붙은 걸까 생각해보게 된다.)의 고충을 다룬 영화가 몇이나 될까. 하지만 일하는 여성의 이야기에선 아이에게 오롯이 몰두하지 않고 직장을 기어코 '포기'하지 않는 죄인 엄마는 꼭 나온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신선하게 다가왔다.



  역사에 기록되는 위인들 말고도 숨겨진 존재가 있었다는 이야기들은 언제나 흥미롭다. 한때 개그로 승화되었던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문구에서도, 흔히 아는 일등 말고 이등의 이야기가 훌륭한 소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단순히 능력이 밀려 이등이었던 것이 아니라 아예 그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것이었다면 어떨까. 캐서린이 흑인 여성이 아니라, 백인 남성이었다면 역사책에서 그리고 위인전에서 만나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감히 흑인이, 여성이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인정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강제로 '히든 피겨스'가 될 수밖에 없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 세 명의 이야기를 다루는 바람에 약간 정신이 없는 데다가 캐서린의 능력이 수학이어서 관객이 그 능력을 체감하는 게 어려운 부분이 있긴 하지만, 무거운 주제를 유쾌하게 담아냈다는 점에서 굉장히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당시 여성들의 옷차림을 구경하는 것도 쏠쏠한 재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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