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 또 같이, 이타적 자본주의를 실현하는 가상화폐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화폐 및 블록체인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어보아야 할 책이다. 비트코인의 시작과 의의, 그리고 '블록체인 2.0'이라고 하는 블록체인 기술의 발전 방향 등을 제시한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만약 정말로 미래에 가상화폐가 시장을 주도하고 그로 인해 세상이 바뀐다면, 미래의 후손들은 이 책을 통해 가상화폐가 시작된 역사와 당시 우리의 생각을 연구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지금 우리나라의 흐름을 이미 겪었던 국가들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 앞으로 우리나라에서의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을 판단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여러모로 재밌고 유익하다.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이타적 자본주의'라는 표현이다. 자본주의는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자본이 지배하는 경제체제(네이버 두산백과)로서, 자본주의라고 하면 우리는 자신의 부를 위해서만 움직이는 이기적인 무언가를 떠올리기 쉽다. 그런데 '이타적'은 이와 너무나 상반되는 단어다. 따라서 이타적 자본주의라는 말은 참으로 모순되게 느껴진다. 책에서는 여러 사례를 들어 가상화폐가 어떻게 이 이타적 자본주의를 실현하게 될지를 보여준다.
우리가 비트코인을 투자(투기)로만 열광하는 이유는 아직 실생활에서 느껴지는 무언가가 없기 때문이다(게다가 주식과 다르게 아주 빠른 속도로 수익을 볼 수 있다는 점이 한몫한다). 완전히 시작단계에 불과한 데다가, 기존의 결제 방식에 아무런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굳이 가상화폐라는 새로운 무언가를 알 필요가 없다. 현재 우리는 현금다발 대신 간단하게 카드를 긁어 결제하는데, 특히 우리나라는 카드 결제가 아주 쉬운 국가에 속한다. 더 나아가 이를 보완하기 위해 앱카드 및 각종 페이가 등장하여 간단한 결제를 더욱 간단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극히 일부에서만 사용할 수 있고 속도 면에서도 편리함 측면에서도 무엇 하나 나은 게 없는 가상화폐는 투자하는 사람들 외에는 굳이 관심이 없을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투자하는 이들도 기술의 발전을 기대한다기보단 제대로 된 공부 없이 투기로 뛰어드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이렇듯 서구를 비롯한 많은 선진국에선 가상화폐의 장점을 곧바로 체감하지 못한다. 카드의 보안성 문제나 은행이라는 중앙 시설에서 부과하는 수수료는 당연한 세상에서 살아왔으므로.
그러나 개발도상국에는 의미가 완전히 다르다. 파티마는 아이를 5명을 둔 여성으로 남편은 타지에서 돈을 벌어 그 돈을 사람들을 통해서 가족에게 전달한다. 파티마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은행을 이용하지 못하는(unbanked) 이들은 대략 25억 명으로 그 수가 너무나 많다. 개발도상국뿐만 아니라 선진국 내에서도 갖가지 이유를 들어 소위 '돈이 안 되는' 이들은 은행을 이용하지 못한다. 경제에서 아예 배제되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교육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고질적인 구조적 문제이며 과도하게 부패한 관료제의 말로다. 신용기록이 없고 신분 증명 시스템이 없다는 점 때문에 많은 이들이 은행을 이용하지 못하는데, 이들에게 가상화폐는 경제적 활동을 돕는 것 그 이상이다. 가상화폐는 플랫폼만 갖추면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 필요가 없으므로 (블록체인 기록에 따라 신분을 몰라도 신용은 보장됨) 그동안 세계 무역에서 배제된 많은 이들에게 동일한 기회가 주어지도록 한다. 일부에게만 좋은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큰 격동을 일으킬 수 있다.
필름아넥스의 설립자인 프란시스코 룰리는 아프가니스탄의 여성들을 감히 동정하지 않는다. 일시적인 지원금을 주는 것보다 여성들이 능력을 키워, 남성들에게 억압받고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스스로 해방되기를 돕는 게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다. 그곳에선 어린 소녀들이 은행을 이용하는 건 굉장히 어렵다. 지갑에 대한 통제권이 철저히 남성들에게 있으며 소녀들이 은행 계좌를 갖는 것 자체를 가족들이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상화폐를 이용하면 그들에게도 개별적인 경제권이 주어진다. 오롯이 자신만의 경제권을 갖는다는 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한편, 개발도상국의 흥미로운 점은 휴대전화 소유율이 높다는 점이다. 은행 계좌 보유 비율보다 훨씬 높다. 개발도상국은 선진국이 겪어 온 숱한 중간과정은 생략하고 새로운 기술을 빠르게 받아들일 수 있는 환경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휴대전화만 있으면 인터넷 연결 없이도 일대일 거래가 가능하고 수수료가 저렴한 가상화폐가 달갑지 않을 리 없다. 책에서는 이 모든 것을 디지털 시민의식을 갖춘 디지털 시민 공동체라고도 표현했다. 관료와 사법부의 무능력과 부패로부터 모든 이들이 해방될 수 있다. 스마트 계약을 통하면 제3기관에 신뢰가 필요가 없고 계약이 아주 간단해진다.
이러한 가상화폐의 시작은 무정부주의자들이 그들의 소망을 이루고자 하는 염원에서였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그 시작에서부터 가상화폐의 특성을 알 수 있다. 바로 탈중앙화이다. 초기의 목적처럼 마치 국가의 존재가 필요 없고 철저히 개인 중심이 되는 느낌을 준다. 심지어 비트코인 관리자들 중에 CEO가 없다. 우리가 워낙에 책임을 지울 수 있는 대표적 인물이 있는 시스템이 익숙한 까닭에, 가상화폐의 이런 구조가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다. 사토시 나카모토가 처음 만들어내었고, 초기 개발자들이 존재했으며 이를 관리해주는 이들이 있긴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비트코이너 모두가 주인이다. 만약 비트코인에 문제가 발생하면 책임을 누군가에게 떠넘기는 게 아니라 집단지성을 발휘하여 해결해 나간다. 개인 중심이 된 사회를 상상하기 힘들지만, 그런데도 우리는 더불어 살아간다. 이것이 바로 커뮤니티의 특성이자 디지털 시민 공동체, 이타적 자본주의의 모습이다. 처음 영국인들이 미국으로 넘어오면서 간절히 바랐던 "나"에 주목된 삶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 책의 재밌는 점은 그럼에도 가상화폐의 미래를 무조건 낙관적으로만 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양한 관점에서 비트코인의 미래를 점치는 주장들을 구체적으로 나열했는데, 이 부분이 참 인상적이다. 아예 가상화폐가 모든 화폐를 대신할 것이라는 주장에서부터 그렇지 못하다면 과연 어느 정도까지 기존의 것을 대체할 수 있는지를 정도별로 다르게 분류한다. 유토피아를 가져다줄 것만 같은 가상화폐가 실제로 이만큼의 역할을 하지 못할 거라는 점을 어느 정도 동의하는 편인데, 훨씬 더 간단한 기술이 나온다면 그것과의 경쟁에서 과연 가상화폐가 성공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결국, 책에서도 언급했듯이 가장 중요한 건 향후 몇 년간의 흐름일 것이다. 원래 모든 혁신적인 무언가의 시작은 우여곡절이 많다. 인터넷의 보급이 포르노였던 것처럼 가상화폐의 시작이 투기가 될 수 있다. 어떤 식으로 펼쳐지든 간에 정말 5년 정도면 가상화폐의 미래가 결정 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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