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현상, 블록체인 2.0』이 오늘날 가상화폐에 이르기까지의 과정과 앞으로의 방향을 전반적으로 소개했다면, 이 책은 여러 분야가 블록체인을 통해 어떻게 변화를 맞이하는지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사실 번역이 매끄럽게 되어 있지 않고, 불필요하게 영어식 표현(고유명사를 제외하고)을 많이 써서 가독성이 좋지 않다. 그래서 더 어렵게 느껴지는데, 내용 자체는 나쁘지 않다. 블록체인 기술이 적용되는 원리를 분야마다 상세하게 기술하므로,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참고해도 좋겠다. 여느 블록체인 책들이 그러하듯, 비트코인이라는 암호화폐보다 기술적 플랫폼 즉, 블록체인의 힘과 가능성에 주목한다. 변화가 일어날 분야가 워낙 사회 전반에 걸쳐 있는지라 가히 '혁명'이라고 부를 만하다고 느껴진다. 



  그동안 블록체인을 공부하면서, 또 4차 산업혁명을 공부하면서 가장 궁금했던 것은 바로 기업의 존재 여부다. 미래를 바라보는 글 대부분이 1인 기업과 프리랜서의 시대를 예측했는데 그렇다면 기업은 아예 존재하지 않을 것인지, 만약 존재한다면 어떤 식으로 존재할지가 너무나 궁금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서는 어느 정도 상상해볼 수 있었다. 


  루빈은 인터넷이라는 거대한 네트워크에도 불구하고 위계질서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피력한다. 인터넷 네트워크는 거대 권력에서 벗어날 거란 기대를 안고 있었지만 사실상 실패했다. 그런데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경영인이 사라지는 세상이 올 것으로 주장한다. 블록컴(blockcom, 블록체인 기술로 조직되고 활동하는 회사)의 시대 말이다. 이러한 블록컴은 디지털 ID와 평판시스템 덕분에 우리는 더욱 정직해지고 예의를 갖추게 됨으로써 구현된다.


  「기업의 속성」(1937)이라는 논문에 따르면, 기업은 세 가지 비용 때문에 존재한다. 다시 말해, 개인이 감당하기에 힘든 이러한 비용 때문에 기업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이러한 비용에는 검색비용, 계약비용, 조정비용이 있다.


  먼저 검색비용은 정보를 찾고 사람을 찾으며 창조할 만한 자원을 발견하는 데에 필요한 비용을 뜻한다. 그런데 블록체인은 이러한 비용을 파격적으로 감소시킨다. 정보를 찾는 데에 생기는 수많은 질문은 그저 블록체인상의 거래내역 하나로 증명되기 때문이다. 인터넷상의 정보는 신빙성은 떨어지고 휘발성은 높다. 그러나 블록체인의 정보는 희귀하고 신뢰할 수 있으며, 영구적이다.


  두 번째는 계약비용이다. 쉽게 말해 계약을 맺는 데에 필요한 모든 비용이다. 여기에는 모든 생산 활동, 거래 비밀 유지, 거래를 집행하고 집행하지 못했을 때의 규제수단, 필요한 노동과 재원 조달 비용의 협상 등이 있다. 블록체인은 이러한 계약비용도 낮춰준다. 구두계약은 왜곡이 심하고 신뢰할 수 없으며, 즉시 이행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규제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한편, 서면계약은 외부와 단절된 상태로 존재할 수 없다. 이 계약을 규제해줄 법률체계가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블록체인 기술에서는 스마트 계약을 통해 계약을 맺어 비용이 획기적으로 줄어든다. 제삼자의 존재가 필요 없고 간단하기 때문이다. 스마트계약은 사람과 기관 사이의 집행을 돕는 컴퓨터 프로그램인데, 계약의 협상과 체결 등을 돕는다. 기본적인 계약 조건을 충족하도록 돕고 만약 돌발상황이 발생하여도 제삼자의 개입이 불필요하다. 여기에는 더 발전된 형태의 다중서명 스마트 복합계약이 있다. 이때는 제삼자의 개입을 거래 당사자들끼리 정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스마트 계약을 통하면 외부 인력을 채용하는 비용도 줄어든다.


  조정비용은 모든 사람이 함께 효율적으로 일하도록 관리하는 비용이다. 딜버트의 법칙에 따르면 가장 무능한 직원이 가장 먼저 승진한다. 그 직원이 무능하기 때문에 실수할 확률이 적은 부서에 배치하고, 이에 따라 무난히 승진에 이르기 때문이다. 한편, 대리인 비용은 기업의 모든 인력이 주주의 이익을 위해 일하도록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을 뜻한다. 회사의 규모가 커지고 복잡해지면 이 대리인 비용은 엄청나게 늘어난다. 블록체인은 딜버트의 법칙에 따른 불필요한 소모를 배제하고 대리인 비용을 낮춘다. 이에 요하이 벤클러는 위계구조를 택하지 않고서도 조직의 지속성과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신뢰구축비용이다. 위의 세 가지 비용과는 별도로 블록체인이 가진 장점인데, 블록체인은 철저한 신뢰 기반 프로토콜이다. 플랫폼 자체가 계약 수행을 집행해야만 하도록 하며 극도로 투명한 관계를 구성하므로 임원은 이에 부담을 느끼고 책임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렇게 블록체인은 기존 기업들이 지니는 여러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여주는데, 그럼에도 기업은 존재할 것이라는 게 이 책의 요지이다. 중요한 점은 기업의 규모와 경계를 어디까지로 결정할 것인가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앞으로의 기업은 길드 형식으로 존재할 것이다. 기업은 지금보다 외부 인력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게 될 텐데 이때, 기업의 핵심 기능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편, 2017년의 대한민국을 떠올리면 가장 중요하게 언급될 사건이 있다. 바로 탄핵과 장미 대선이다. 2016년의 촛불 민심과 더불어 2017년까지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 민주주의의 가치를 증명하였다. 우리의 역사에 기록될 어마어마한 일이다. 역사적으로 다양한 민주주의의 흐름을 겪은 우리는 당연히 미래의 민주주의는 어떻게 펼쳐질지가 궁금하다. 그런데 민주주의에도 블록체인은 큰 변화를 준다. 이를 책에서는 '제2세대 민주주의'라고 칭하고 있다.


  대의 민주주의는 어떤 모양새를 하고 있든 간에 수동적이라는 특징을 지닌다. 저자인 돈은 『디지털 이코노미(The Digital Economy)』에서 이렇게 말했다.


  "투표에 부친 발의안은 보통 크고 복잡한 이슈를 정제한 내용일 뿐이다.이러한 발의안은 오랜 기간 마찰, 대립, 타협을 거치고 나서 도출한 결과다. 발의안을 이해하고 적절히 투표하려면, 시민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정제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 필요하다."


  즉, 이미 권력을 가진 이들이 정제한 내용을 가지고 투표만 하는 국민들의 모습은 수동적일 수밖에 없다는 의미이다. 게다가 정부는 모든 이슈에 빠르고 적절하게 대응하지는 못한다. 내부에 관련된 정책 전문가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 투표에 부친다고 해도 어떠한 해결 방법에 도달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직접 민주주의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모든 이슈에 대해 전문 지식을 갖추지 못했고, 시간도 없다. 한 이슈에 대해 전체 의견이 필요한 게 아니라 합리적인 결과가 필요하다. 


  책에서는 이렇게 현재의 민주주의에 대안으로 여러 형태를 보여주는 데 그중에 재밌는 것은 유동적 민주주의이다. 위임적 민주주의라고도 불리는데, 고대 아테네에서의 직접 민주주의와 오늘날의 대의 민주주의에서 좋은 점끼리만 결합한 형태를 말한다. 이에 로블스 엘비라는 국민 개개인이 어느 때라도 참여 수준을 결정할 수 있다고 한다. 이슈에 따라 국민은 관련 전문가를 자신의 대리자로 선정할 수도 있고, 어떨 때는 직접 참여할 수도 있다. 


  이와 같은 형태가 가능하도록 돕는 것 역시 블록체인이다. 블록체인은 대의 민주주의의 핵심인 선거 방식을 바꾼다. 세계적으로 민주주의 역사가 지속하는 동안 투표 형식은 오래도록 바뀌지 않았다. 때에 따라 유권자는 겁박을 당하고 투표 결과는 조작되기도 했다. 이러한 모든 부정적 개입을 차단할 수 있다. 원리는 이러하다. 선관위가 후보자나 안건에 대해 지갑을 생성하면 유권자는 토큰(코인) 하나씩을 할당받는다. 그리고 그 코인을 지갑에 보내는 방식으로 투표가 이뤄진다. 이 과정에 익명으로 또 투명하게 이루어진다는 점이 굉장히 중요한데, 그렇기 때문에 유권자는 보호되고 결과를 신뢰할 수 있다. 선거가 투명하다는 것은 선관위와 별개로 투표의 기록과 투표권 행사 내역을 외부에서도 확인할 수 있어야 함을 의미하는데, 블록체인이 이를 가능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 책의 부제를 인공지능을 뛰어넘는 거대한 기술이라고 붙인 이유를 알 수 있다. 제4차 산업혁명이라고 하면 우리는 인공지능, 기계가 사람을 대체하는 이미지만을 떠올리는데, 이렇게 블록체인 기술이 미칠 영향력 또한 어마어마하다는 것이다. 이 리뷰에서는 내가 인상 깊었던 기업과 정치 분야만을 다루었지만, 책에서는 사물 인터넷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를 설명하고 있으므로 시간이 많다면(책이 많이 두꺼우니까ㅎㅎ)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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